박항서매직 역사 베트남영웅 쌀딩크감독
출처: 일간스포츠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
1984년 ~1988년 럭키금성 시절 모습 (선수생활 5년 만에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며 돌연 은퇴 선언한 박항서 감독)
2017년 10월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있었던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국가 대표팀·U23대표팀·올림픽대표팀 감독 선임 발표 기자회견 모습
"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붓겠다.-취임기자회견 장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지난해 12월 21일 국가대표 축구팀을 정부청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박항서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 하는 모습.
박항서 감독은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며 축구에대한 열정을 보입인다.
이런 열정은 청소년대표팀 주장으로 선수 생활을 하며 팀에 우승을 안긴다.. 우승한 후 박항서 감독은 국가대표팀까지 발탁되는 계기가 된다. 축구에 열정이 강했던 박감독은 프로축구리그의 개막으로 현fc서울(전럭키금성 황소)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고
5년간의 프로선수생활 중 팀우승등에 기여하고 은퇴를 결정한다. 지도자의 길을 가기 위함이다.
박항서감독은 은퇴후 LG와 삼성프로축구단에서 코치로 생활하던중 94미국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합니다 2000년 허정무감독 체제에서 수석코치로 활약하던 박항서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 감독으로 선임된 거스 히딩크감독 체제에서 코치로 활약하며 첫번째 전성기를 맞이 하는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
2002한일월드컵 한국의 조별예선 첫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첫골을 넣은 황선홍이 제일 먼 저 달려가 안긴 사람이 현 베트남 대표팀 감독 박항서 이다. 한동안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국대표팀의 2002한일월드컵 성공의 뒷편에는 박항서코치의 현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수있다.
한일월드컵2002년 당시의 숨은 공로자하면 박항서를 떠올리는 대목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2002월드컵이후 박항서 감독은 축구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나
그해 2002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에서 이란에게 패하며 동메달에 그쳤다는 성적부진의 이유로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후
2002년이 박항서감독에게는 최고의 한해이면서 최악의 한해로 기억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후 박항서감독은 포항, 경남, 전남, 상주에서 코치와 감독으로 한국프로축구에 몸담았으며 2015년 감독직에서 물러납니다 2017년 한국프로축구 3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의 창원시청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축구를 시작하였지만 이런 박항서감독은 한국축구계에서 잊혀져가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던 박항서 감독은 2017년 11월부터 아무런 관심을 받지못하며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제2의 축구인생이 시작된다. 2018년 AFC 23세이하 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박항서감독은 축구인생이 다시금 부활한다.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것이다.. 이후 2018아시안게임의 56년만의 4강, 스즈키컵에서 10년만의 우승등 베트남의 축구영웅으로 다시태어났으며 모든 찬사와 국민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습니다 쌀국수와 2002년도에 4강 신화를 쓰셨던 그때 당시의 우리나라의 감독인 히어로 거스 히딩크씨의 이름을 각각 따가지고 쌀딩크 라는 별명을 붙을 정도로 우라나라와 베트남에서 한류의 만드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박항서 감독은 말합니다. 자신이 베트남에서 한 일은 단지 편견을 깨부수고 잠들어 있던 그들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것뿐이라고 ...
베트남 축구팀과 박항서감독을 격려하는 문제인 대통령